신선생은 누구인가?

2025. 3. 4. 12:56백두산 환&단&약이야기/환& 단[동의보감등]

신선생은 누구인가?

 

 

()나라 장병문(張秉文)수신비람(修身備覽)권하(卷下)에 등장하는 신선생(申先生)에 대한 기록을 보면...

 

수신비람속 신선생(申先生)의 기록 해석

 

 

"신 선생(申先生)은 강회()와 절강() 지역을 오가며, 스스로 신()씨 성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한여름의 찌는 더위와 한겨울의 혹한 속에서도 거꾸로 걷고,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며, 사람들이 따르기 어려운 길을 걸었다."

 

 

"병든 자를 만나면 종이에 글을 써서 몸의 양기(陽氣)가 모이는 곳에 인장처럼 찍었는데, 그러면 병이 나았다."

 

*생각하여 보면 184년에 홍건적의 난을 일으킨 장각이(태평도 창시자) 부적과 주술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면서 민중을 이끌었다고 하는데, 장각은 누구에게 배웠는지? 기록이 없고, 신선생의 행한 경지는 높은 경지로, 아마도 세상에 장각이 보여준 드러난 부적술 등보다는 드러나지 않는 높은 경지의 부적술등의 명맥을 이어온 사람이 아닌지? 추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소문경(素問經) 이정변기론편(移情變氣論篇)에는

 

余聞古之治病惟其移精變氣可祝由而已

 

"내가 들으니, 옛날의 질병 치료는 오직 정기를 이동시키고 기를 변화시키는 것뿐이어서, 주술(祝由/축유)로써 치료할 수 있었다고 한다.“를 보면 연관성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즉 신선생의 부적술은 이러한 고대의 비술을 이어받은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축유(祝由)"는 주문, 부적, 기원 등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정기()와 기()를 조절하여 질병을 치유한다는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신선생이 "양기(陽氣)가 모이는 곳에 인장처럼 찍었는다는 것은 인체의 중요한 경혈점이나 에너지가 모이는 곳을 대상으로 한 치료법을 의미할 수 있으며, 이는 고대 의학적·에너지적 개념과도 연관성이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선생은 이(축유(祝由))를 더 높은 경지로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윤주(潤州)에서 한 부유한 사람에게 '네 마음이 평온하고 선하니, ()를 따를 수 있다' 고 말했다." "그에게 국수 한 그릇을 가져오게 하여 입김을 불어 넣었더니, 이를 먹은 후로는 곡식을 먹지 않게 되었다." (벽곡 수행과 관련)

 

 

"그는 한때 양주(揚州)에서 진흙으로 만든 두 마리의 소를 팔며,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단돈 120전에 가져가라' 그러나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고, 오직 한 명의 관리(典吏)가 그것을 사갔습니다. 신선생이 그 진흙 소들에게 유향주(乳香酒)를 뿌리자, 두 마리의 소가 달리기 시작해 멈추지 않았습니다.

 

*생각하여 보면 무생물인 진흙 소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이는 축유(祝由)와는 다른, 신비로운 능력 또는 도술(道術)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신선생은 진흙 소에 술을 뿌리는 것만으로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는 도교적 전통에서 말하는 "생명력을 불어넣는" 능력이나, 무생물을 조종하는 신비로운 힘을 암시합니다.

 

이러한 능력은 축유보다는 도교의 신선(神仙) 사상이나 초자연적 능력과 더 관련이 깊습니다. 진흙 소가 움직이는 것은 단순한 기적을 넘어, 신선생이 평범한 물건에도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이는 그가 단순한 인간을 넘어선 존재로 묘사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럼 신선생에 대한 기록이 송나라 시대의 학자 장병문의 수신비람에 등장하고 그 외 유통봉의 이야기 등에 등장하고, 그후 기사등이 보이지 않는 것은 ...혹시?

 

신선생(申先生)이 송나라 시대의 인물로, 당시 사람들과 직간접적으로 교류한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그의 정체와 행적이 너무 신비롭고 초자연적이어서 위정자들이 기록을 지워버렸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이는 고대 중국에서 신비로운 인물이나 사상이 통치 체제에 위협으로 간주되어 억압되거나 기록에서 삭제된 사례와 일맥상통합니다.

 

위정자들의 의도적 삭제

 

고대 중국에서 통치자들은 민간의 신비로운 인물이나 사상이 자신들의 권위를 위협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특히, 신선생과 같은 인물은 민중을 이끌고 사회적 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을 삭제하거나 억압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한 말기의 장각(張角)은 태평도의 지도자로 민중을 이끌었지만, 그의 반란 이후 태평도와 관련된 기록은 의도적으로 삭제되거나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선생도 비슷한 이유로 기록에서 배제되었을 수 있습니다.

 

도교와 유교의 갈등

 

송나라송나라 (960~1279) 시대는 유교가 통치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던 시기입니다. 도교적 인물이나 사상은 유교적 관점에서 비주류로 간주되어 기록에서 배제되거나 경시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선생의 신비로운 능력과 도교적 색채는 유교적 통치 체제와 맞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민간 전설의 한계

 

신선생의 이야기는 주로 민간 전설이나 구전(口傳)으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민간 전설은 공식 역사 기록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지거나 변형되기 쉽습니다. 위정자들이 이를 공식 기록에서 제외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신비로운 인물에 대한 두려움

 

신선생과 같은 신비로운 인물은 민중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로 간주되었을 것입니다. 통치자들은 이러한 인물이 자신들의 권위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여기고, 그에 대한 기록을 지우거나 억압했을 수 있습니다.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는 것

 

사마천은 사기에서 공식 기록에 포함되지 않은 이야기나 숨겨진 진실이 존재함을 인정했습니다. 신선생과 같은 신비로운 인물은 공식 기록에서 배제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의 이야기는 민간 전설이나 구전으로 전해졌지만, 공식 역사에서는 지워졌을 수 있습니다.

 

권력과 기록의 관계:

 

역사는 승리자에 의해 쓰인다는 말처럼, 고대 중국에서도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불편한 진실이나 위협적인 인물의 기록을 삭제하거나 왜곡했습니다. 신선생의 신비로운 능력과 민중에 대한 영향력은 통치 체제에 위협으로 간주되어 기록에서 지워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역사가의 역할:

 

사마천은 역사가로서 단순히 사실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숨겨진 진실을 탐구하고 인간 사회의 복잡성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그의 말은 역사 기록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내는 역사가의 사명을 강조합니다.

신선생과 숨겨진 역사

 

신선생의 이야기는 사마천이 말한 "드러나지 않는 것"의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신비로운 능력과 행적은 민간 전설로 전해졌지만, 공식 기록에서는 지워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역사가 단순히 기록된 사실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무수한 이야기들과 진실들이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의가들이 굳이 선생의 방()“이라고 표현을 한 것은 무한한 존경심을 표한 것으로 보입니다.

 

 

잠시 적어 보았습니다.

 

 

 

 

 

 

 

경옥고(瓊玉膏)

 

 

철옹선생신선비법경옥고(鐵甕先生神仙秘法瓊玉膏)진회숙복차약유험(陳晦叔服此藥有驗)。)

 

 

新羅人參二十四兩舂一千下爲末生地黃一秤十六斤九月采雪白茯苓四十九兩木舂千下爲末白沙蜜十斤

 

 

上件人參茯苓爲細末蜜用生絹濾過地黃取自然汁搗時不得用鐵器取汁盡滓用藥一處拌和勻入銀石器或好瓷器內封用如器物小分兩處物盛

 

用淨紙二三十重封閉入湯內以桑木柴火煮六日如連夜火即三日夜取出用蠟紙數重包瓶口入井內去火毒一伏時取出再入舊湯內煮一日出水氣取出開封取三匙作三盞祭天地百神焚香設拜至誠端心

 

每晨朝以二匙溫酒化服不飲者白湯化之

 

此膏填精補腸化爲筋萬神具足五髒盈溢髓實血滿發白變黑返老還童行如奔馬日進數食或終日不食亦不饑關通強記日誦萬言神識高邁夜無夢想

 

人年二十七歲以前服此一料可壽三百六十歲四十五歲以前服者可壽二百四十歲六十三歲以前服者可壽百廿歲六十四歲以上服之可壽至百歲服之十劑絕嗜欲修陰功成地仙矣一料分五處可救五人癰疾分十處可救十人勞瘵修合之時沐浴志誠勿輕示人

 

 

홍씨집험방(洪氏集驗方) 1170

 

 

남송(南宋) 시기의 의학 서적으로, 홍준(洪遵, 11201174)이 편찬한 책입니다. 이 책은 홍준이 평생 동안 수집하고 검증한 다양한 의학 처방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실용적인 치료법과 임상 경험을 중시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홍씨집험방은 총 5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과, 외과, 부인과, 소아과 등 다양한 질병에 대한 치료법과 약재 사용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홍준은 이 책에서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처방들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정리하여, 당시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 책은 남송 시대의 의학 지식을 집대성한 중요한 문헌 중 하나로, 후대 의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홍씨집험방은 전통 한의학의 발전과 임상 의학의 실용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홍씨 집험방의 진회숙(陳晦叔) 관련하여 문헌을 찾아 보면 호전의 글이 보입니다.

 

 

희제진회숙경략수재(戲題陳晦叔經略秀齋)

 

· 胡銓

 

天宇脩眉浮太華晚晴濃綠新如畫

何似文君蹙遠山秀色可餐清更雅

人知潑黛青孱顏共喜眉宇脩彎環

不知是中石蘊玉遂能發彩驚塵寰

美人美人隔秋水娟娟靜淑金閨裏

其人如玉德滿身笑殺西湖比西子

杜陵破帽隨金鞍心醉歸來空掩關

不須更問許玉斧二十四山如髻鬟

 

하늘의 아름다운 눈구름이 태화산 위에 떠 있는 것 같고, 저녁의 맑은 하늘과 짙은 초록빛이 마치 새로 그린 그림처럼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풍경은 문군(文君)의 먼 산을 바라보는 모습과도 같아, 그 아름다움은 마치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맑고 고아하다.

 

사람들은 푸른 빛깔이 얼굴에 흐르는 것을 알고, 모두 그 아름다운 눈썹과 얼굴의 곡선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 속에 감춰진 옥()이 있어서 그 빛이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미인은 가을 물 건너에 있어, 아름답고 조용하며 고요한 금빛 규방(閨房) 안에 있다.

 

그녀는 옥과 같은 덕을 가득 지녔고, 서호(西湖)와 서시(西子)를 비교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두릉(杜陵)의 낡은 모자를 금안장에 걸고, 마음이 취해 돌아와 빈 방문을 닫는다.

 

 

더 이상 허옥부(許玉斧)에게 묻지 않아도, 스물네 개의 산이 마치 머리카락처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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